일본 추리소설의 기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란?
일본 미스터리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この ミステリー がすごい!)는 단순한 추천 도서 리스트가 아닙니다. 매년 발표되는 이 순위는 일본 미스터리 업계에서 하나의 권위 있는 문학상처럼 여겨지며, 실제로 순위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빠르게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고 독자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1988년부터 매년 발간되고 있는 이 순위는 독립 출판사인 ‘다카라지마샤’에서 주관하며, 전문 평론가뿐만 아니라 서점 직원, 작가, 출판사 관계자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이들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평론 중심이 아닌 현실 독서 트렌드와 대중의 기호가 반영된 리스트로 더 많은 독자에게 신뢰를 주죠.
특히 이 리스트는 신인 작가의 데뷔와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 이름을 올리기만 해도 “이 작가는 믿고 본다”는 신뢰가 생기며, 작품은 곧바로 번역되거나 미디어화되어 글로벌 팬층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일본 소설 마니아들은 매년 말이나 새해 초, 이 리스트가 발표되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립니다.
시대를 비추는 거울, 수상작 흐름 살펴보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수상작을 한 해씩 살펴보면, 단순한 작품 순위를 넘어서 일본 추리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초창기에는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 — 즉 밀실 살인, 치밀한 트릭, 논리적 추리 중심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아비코 타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쇼킹한 설정과 충격적 반전을 가진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죠.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정통 추리소설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며 마니아층의 탄탄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를 지나면서부터 일본 미스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사회 문제, 인간 심리,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등 심층적인 테마를 중심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부상한 겁니다. 대표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단순한 살인 사건 이상의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최근에는 청춘 서사, 범죄 드라마, 심리 미스터리가 혼합된 융합형 작품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 아오사키 유고 같은 신예 작가들이 그 흐름을 이끌고 있으며, 전통적인 ‘트릭’보다 감정선과 인물의 동기, 현실적 설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수상작 추천: 지금 꼭 읽어야 할 베스트 4
- 히가시노 게이고 – 《용의자 X의 헌신》
200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제134회 나오키상 수상, 2017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20주년 기획 '20년간(1997~2016)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서 2위 한 작품. 이혼 후 힘들게 살아가던 여성 야스코가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살해하게 되고, 그녀의 이웃이자 천재 수학자인 이시가미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며 사건을 은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결심을 하지만, 사건을 추적하던 물리학자 유카와가 그의 헌신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면서 반전이 펼쳐집니다.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사랑과 희생, 인간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 미야베 미유키 – 《이유》
1999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회파 추리소설로, 고급 맨션에서 일어난 의문의 전락사 사건을 중심으로,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가족과 이웃들의 숨겨진 갈등과 비밀이 드러나면서 현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칩니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중산층의 허영, 가족 관계의 균열 등을 예리하게 그려내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는 서사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섬세한 인물 묘사와 사회 비판 의식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 나카야마 시치리 – 《안녕 드뷔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하루카가 화재로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고 자신 또한 큰 화상을 입은 채 겨우 목숨만 부지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추리소설입니다. 피아니스트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첫 번째 편으로, 상처받은 소녀가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다룹니다. 2009년 『안녕, 드뷔시』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으며 작가가 데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원제는 '사요나라 드뷔시'로 작별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음악과 미스터리가 결합된 성장소설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 아오사키 유고 – 《지뢰 글리코》
2024년 제24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제7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37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모두 석권하며 3관왕으로 오랜 무관에서 벗어나게 해 준 작품. 전통 추리공식에 현대적 감성을 더한 신감각 미스터리. 놀이를 소재로 한 설정, 미묘한 심리전, 그리고 청춘 서사가 절묘하게 얽혀 있으며 최근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빠르게 팬층을 확보 중입니다.
마무리: 독자의 선택을 바꾸는 리스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는 단순한 추천 도서 목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가이드이자, 일본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진화를 기록해 온 연대기입니다.
어떤 장르든 꾸준히 읽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길잡이가 필요하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매년 이 리스트를 살펴보며 작가의 이름을 메모하고, 수상작을 한 권씩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독서 세계는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특히 일본 미스터리에 입문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리스트를 중심으로 시작해보세요. 완성도 있는 스토리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