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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최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by j책방j@★◁ 202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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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관련이미지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관련이미지

 

히가시노 게이고, 감정으로 추리를 이끌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말 그대로 ‘믿고 읽는 작가’입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그는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미스터리와 감성을 결합한 스타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그의 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그간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감각과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특히 감정 중심의 추리 전개가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가가 형사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팬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가가 쿄이치로 형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시리즈와는 결이 다릅니다. 이번 소설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데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삶, 그가 살아온 시간, 그와 얽힌 사람들의 관계에 더 깊게 다가갑니다. 이는 기존 추리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구성으로, 단순한 사건 해결보다 감정과 인간관계의 퍼즐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작품에서 추리의 구조를 감정의 흐름 속에 녹여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자 어떤 감정을 가졌고,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를 하나씩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런 접근은 진실이 밝혀졌을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내면에 더욱 주목하게 만듭니다.

피해자의 삶을 되짚는 추리, 그리고 인간의 그림자

줄거리의 중심은 고급 호텔에서 벌어진 한 남성의 의문사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성공한 인물로 보이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가가 형사는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사건의 퍼즐을 맞춰 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단순히 억울한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또 누군가에게는 미련을 남긴 복잡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가해자를 찾는 대신, 피해자를 파헤치는 서사는 기존 미스터리의 공식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사건을 통해 가해자의 정체와 범행 수법을 추적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질문의 방향을 바꿉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죽은 사람은 누구였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 이 물음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범인을 찾는 추리를 넘어, 사건의 배경과 감정의 결까지 깊이 이해하게 만듭니다.

피해자 주변의 인물들—그의 연인, 가족, 직장 동료, 친구 등—은 각자의 관점에서 그를 기억합니다. 그들의 진술은 서로 다르고, 때로는 충돌합니다. 이 차이를 통해 독자는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한 감정을 엿보게 되며, 진실에 접근할수록 복잡한 심리의 교차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게이고는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어긋남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누구 하나 절대적인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불완전함이 존재합니다.

이런 방식의 전개는 단순한 반전이나 트릭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죽음이 남긴 공백,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는 사람들의 고백과 회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 작품은 하나의 인간 드라마로 완성됩니다.

진실보다 사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또 한 번 장르의 경계를 넘은 작품입니다. 물론 추리소설의 구조는 존재합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의문이 생기고, 단서가 모이고, 마침내 진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특히 가가 형사의 역할은 이 작품에서 더욱 부드럽고 인간적인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그는 단순히 수사관이 아닌, 사람들의 상처를 경청하는 ‘관찰자’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됩니다. 피해자와 주변 인물들의 삶을 듣고, 이해하고, 판단하기보다 공감하려는 그의 태도는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이 소설은 사회적 시선, 인간관계, 책임감, 후회 등 여러 키워드를 조용히 던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절제된 문장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천천히 젖어들게 됩니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되죠.

이 작품은 결국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은 단순히 범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 어둠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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