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요모타 이누히코 『계엄』 리뷰
『계엄』은 계엄령이 선포된 혼란의 시대, 인간이 얼마나 빠르게 윤리와 이성을 잃고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붕괴, 그로 인한 권력의 야만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을 조명한다. 단순한 재난 소설이 아닌,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사회학적 탐구이기도 하다. 법과 제도가 무너진 세계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일깨운다.
법과 윤리가 무너진 사회, 계엄령의 본질은 무엇인가
『계엄』은 일본 소설계에서 보기 드문 강도 높은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계엄령이 선포된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회 붕괴와 인간 타락의 과정을 담고 있다. 계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가 아니다. 이 소설 속의 계엄령은 법이 법이기를 멈추고, 도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인가’를 뒤흔든다. 초반부는 매우 조용하게 시작된다. 체제가 조금씩 무너지고, 사람들의 행동이 변화하는 과정은 섬세하게 묘사된다. 시민들은 여전히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그 믿음은 점점 균열을 보인다. 미디어는 침묵하고, 공공 서비스는 마비되며, 무장한 군대는 보호자가 아닌 통제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거창한 외침이 아니라, 일상의 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공포로 그려낸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계엄령’이라는 키워드를 단지 외형적 설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윤리와 도덕, 그리고 문명적 정체성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는 렌즈다. 독자는 이 렌즈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바꾸고, 어떻게 자신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서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정치, 사회, 도덕, 심리학을 아우르며 독자에게 복합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그 신뢰가 깨졌을 때,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픽션 속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이다.
인간성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평범한 인간이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극단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이들은 선도 악도 아닌, 복잡한 회색의 윤리를 가진 인간들이다. 상황은 그들을 시험대에 올리고, 그 시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작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들은, 누가 봐도 명백한 폭력이 ‘정상화’되는 순간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약자에 대한 폭력, 공동체 내의 사적 정의 실현. 이누히코는 그것을 독자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행동과 선택을 통해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계엄령 하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절망 속에서도 이웃을 지키고, 어떤 이는 망가진 윤리 안에서 작은 저항을 시도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 소설이 단지 절망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작가는 ‘무너짐’ 속에서 피어나는 마지막 희망을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 희망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물은 윤리를 포기하거나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남는다. 작가는 그러한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선택이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보여준다. 생존은 때로 존엄보다 앞서고, 폭력은 자의가 아닌 환경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본론을 통해 우리는 이 소설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디스토피아는 미래가 아닌 지금일지도 모른다
『계엄』의 결말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전형적인 희망의 메시지나, 통쾌한 정의 구현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끝내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독자로 하여금 그 답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사회 시스템 위에 삶을 올려놓고 살아간다. 법, 질서, 윤리, 상식—이 모든 것이 작동할 것이라 믿으며 일상을 유지한다. 하지만 『계엄』은 그것들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는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경고다. 이누히코는 독자에게 과장된 상상이 아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사회 붕괴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질과 윤리, 시스템의 허상을 되짚게 만든다. 『계엄』은 불편한 소설이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고,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어떤 인간일지를 묻는다. 우리는 과연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 질문을 남긴 채, 조용히 독자의 마음에 긴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