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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름』,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한 계절

by j책방j@★◁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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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여름'우리가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한 계절 관련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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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름』을 지나온 우리에게, 소메이다메히토가 건네는 조용한 물음

다메히토의 『나쁜 여름』은 단순한 청춘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불완전한 시절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침묵과 후회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그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나는 그 여름에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소리 없는 고백과 회한,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파동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여름의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남는다.

그 여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무겁고 조용한 기운을 품고 있다. 다메히토는 밝고 경쾌한 전개 대신, 뜨거운 공기가 가라앉은 여름날 오후처럼 묵직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배경은 고등학교, 등장인물은 청소년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학원물도,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도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말하지 않는 감정’과 ‘눈을 돌린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은 어느 날, 과거에 얽힌 한 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은 너무나 명확하고 동시에 너무나 모호하다. 분명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었지만, 그때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은 희미해졌고, 죄책감은 더 단단해졌다. 다메히토는 이 미묘한 감정 구조를 교묘하게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여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여름은 흔히 추억의 계절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소설의 여름은 그렇지 않다. 더위와 불쾌감, 불면의 밤, 말 못 한 감정들이 이 계절에 덧입혀진다.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지나온 어떤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쯤은 ‘나쁜 여름’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서사는 그래서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작품은 빠르게 전개되기보다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서서히 조여온다. 독자는 어느새 인물들과 함께 숨 쉬고, 외면하고, 방황하게 된다. 그 여름은 과거에 있었지만, 지금 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침묵과 외면이 만든 조용한 죄책감

소설의 중심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작품 후반에 가서야 점차 드러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감정’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대부분은 말하지 않은 채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하는 친구들, 교사, 가족까지 모두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그 자체로 선택이었고, 때로는 방어였으며, 때로는 가해였다. 그리고 그 침묵이 쌓여 한 여름을 ‘나쁘게’ 만들었다. 다메히토는 이 모든 과정을 담담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래서 더 아프다. 격한 고백이나 눈물이 없는데도, 그 조용한 장면들이 독자의 마음을 꾹꾹 눌러온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악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현실적이다. 누구나 그 나이 땐, 말하지 못한 게 있었고, 외면했던 진실이 있었다. 그래서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단순히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겹쳐보게 된다. 특히 작가가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 학교라는 공간의 폐쇄성, 또래 간의 위계와 침묵의 동조는 독자의 기억 깊은 곳을 자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소설이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회는 곧장 용서로 이어지지 않고, 고백은 언제나 해소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에게 감정을 던져줄 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철저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 점이 이 소설을 더 깊고, 오래 남게 만든다.

 

『나쁜 여름』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 읽고 나면, 무언가 조용히 남는다. 그것은 뚜렷한 결론도, 통쾌한 해결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 왜 말하지 못했을까’,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같은 질문이 오래 머문다. 이 작품이 미스터리 소설이면서도 철저히 감정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작가가 진실보다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진짜 가치는, 독자로 하여금 한때의 자신과 마주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 시절의 친구, 그 시절의 자신, 그리고 끝내 꺼내지 못했던 말들. 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감정들이 이 작품을 통해 조용히 떠오른다. 그 여름은 끝났지만, 그 감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메히토는 『나쁜 여름』을 통해 청춘의 불완전함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 응시는 비난이 아닌 이해의 시선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은 어설펐고, 조금은 약했으며, 그래서 ‘나쁜 여름’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도 이 소설은 조용히 말해준다. 『나쁜 여름』은 그런 이야기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품고 있을, 말하지 못했던 계절. 그리고 언젠가 꺼내어 다시 마주봐야 할 기억. 그 여름이 ‘나쁘기만 한 계절’이 아니었음을, 이 소설은 말없이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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